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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V 감염으로 인한 두경부암 발생률 늘어…무료 백신 접종 남성까지 확대 필요

 "과거에는 남성은 HPV에 감염돼도 사마귀만 치료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남성의 두경부암 발생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 접종 만으로는 자궁경부암 예방도 힘들기 때문에 남성도 같이 접종하는 게 좋다는 게 의학계의 판단이다"

한국MSD가 3월 4일 '국제 HPV 인식의 날'을 맞아 지난 3일 개최한 미디어세션에서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비뇨의학과 이승주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 HPV바이러스로 인한 암 발생률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의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남녀 관계 없이 암 유발하는 HPV 바이러스

HPV는 널리 퍼져 있는 바이러스로 성인 남녀의 75%~80%가 일생 동안 한 번은 HPV 감염을 경험한다. 종류도 발바닥과 손가락에 사마귀를 발생시키는 1번, 2번과 더불어 생식기 주변에서 발생하는 6, 11, 16, 18번까지 다양하다. 이승주 교수에 따르면 과거에도 130개 이상이었던 HPV 바이러스의 유형이 최근에는 200개까지 늘었다.

HPV바이러스는 평소에는 피부를 뚫지 못하다가 피부에 상처가 나거나 손상되면 표피의 맨 아래 있는 기저세포를 감염시킨다. 다만 진피층을 뚫지는 못하기 때문에 전신질환으로 이어지지 않고 표피에서만 머물게 된다. 

우리 몸의 면역반응은 진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HPV바이러스 감염 시 면역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라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다행히 표피에서의 미세한 면역반응에 의해서 2년 정도가 지나면 97~100%가 사라지는데,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오랜 기간 몸에 머물러 암을 유발하는 케이스다. 

HPV바이러스에는 전신증상을 유발하지 않고 사마귀만 발생시키는 저위험바이러스와 우리 몸에 10년 이상 머물며 감염세포를 암으로 변형시키는 고위험바이러스가 있다. HPV바이러스로 인해 자궁경부암, 질암, 음경암, 항문암 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구인두암과 두경부암의 발생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 HPV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가장 흔한 암은 여성에게 나타나는 자궁경부암이었으나 최근 들어 남성의 두경부암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다. 남성에게서 HPV바이러스로 인한 암 발생률이 낮았던 이유는 음경의 경우 자궁처럼 바이러스가 오래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목 안은 바이러스가 머물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승주 교수는 "최근 성생활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생식기에 있던 바이러스가 입 안, 목 안으로 옮겨 질환을 유발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며 "목 안은 생식기와 같이 바이러스가 오래 머물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두경부암, 구인두암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두경부암이 자궁경부암보다 더 심각한 이유는 자궁경부암은 암 전단계에서 스크리닝을 통해 발견이 가능하지만 두경부암은 아직 그런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암 발생 후에야 이를 알 수 있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집단면역 위해 NIP 대상 남성까지 확대해야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HPV 국가예방접종(NIP)을 늘리는 추세다. 국내의 경우 2016년부터 만 12세 이상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HPV백신 국가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남성 청소년으로는 접종 대상이 확대되지 않았다. 

현재 HPV NIP를 시행 중인 110개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포함한 52개국은 여아에서 남아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한 상태다. OECD 가입국 기준으로보면 GDP 기준 상위 10개국 중 7개 국가가 HPV국가예방접종사업에 남자를 포함했다. 

이 교수는 "HPV 관련 암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집단 면역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 사람이 맞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80~90%가 맞아야 집단면역이 가능하다"고 강조하며 "바이러스를 남자가 매개하기 때문에 여성만 맞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 연구 결과 남녀 모두에게 HPV 백신 접종 시 여성에게만 접종한 것보다 효과적이었다"고 전했다. 

관건인 '비용효과성' 입증 가능할까

접종 대상을 남성 청소년까지 늘리는 데 있어서 넘어야 할 관문은 비용효과성의 입증이다. NIP 비용은 정부예산안으로 반영되는 만큼 접종 대상 확대의 비용효과성이 분명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MSD 의학부 양경선 이사는 "유럽에서 진행된 모델링 예측 연구에서 남녀 모두 HPV 백신 접종 시 여성 단독 백신 접종 시에 비해 비용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2011년부터 HPV 4가 백신의 남아 대상 접종을 도입한 미국은 도입 전 비용효과 연구 결과 뿐 아니라 질환의 질병부담, 사회적 요구도, 남성 질환 예방의 중요성, 백신 접종의 이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NIP를 도입, 확대했다. 

호주의 경우에도 HPV백신 남아 접종에 대해 비용효과성과 남성 청소년의 유병율, 효과성을 다각도로 검토 후 도입했다. 앞선 국가들의 평가에서 남아 대상 접종의 비용효과성이 이미 입증됐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HPV백신 국가 예방 접종 도입 전후 유병률을 비교해 보면 도입 후 유병률이 크게 감소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NIP 도입 후 백신 접종 대상군인 14-19세에서 HPV 유병률이 가장 많이 감소했으며, 남아까지 접종군을 확대한 후에는 접종대상 군 이외의 연령에서도 HPV 유병률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 

호주는 미국보다 NIP 도입은 늦었으나 접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15세 여성의 80.5%, 15세 남성의 78%가 HPV 백신 3회 완전 접종률을 나타냈다. 적극적인 움직임에 힘입어 호주는 2028년 이전 자궁경부암을 퇴치할 첫 번째 국가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HPV 국가백신접종 대상을 남성 청소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공약으로 9가 HPV 백신의 남녀 무상접종을 내걸었다. 현재 남성의 HPV질환, 감염병 예방 효과, 공중보건학적 우선순위, 남아 백신 대상 비용효과 분석 등이 진행 중이며 올해 상반기 중 결과 발표가 예상된다.

한국MSD 의학부 김수정 전무는 "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HPV 백신이 유일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예방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며 "다양한 질환을 일으키는 HPV바이러스의 집단 면역 형성을 위해 전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예방 접종을 확대, 지속하려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다현 기자 dhbae@kpanews.co.kr

기사입력 2023-03-04 05:5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