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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이 자율에 맡기는 지역필수의사제…“실패한 정책의 재탕”
10년 의무복무에 강제성 더한 지역의사제는 위헌성 논란도
“자발적으로 민간병원이 지방에 개설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 지역의료 공백에 대해 의사의 지방 근무를 강제하는 방식의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미 수도권과 일부 인기 과목으로 의사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에서 기존의 논의들이 해법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진=DB)

[메디컬투데이=이재혁 기자] 지역의료 공백에 대해 의사의 지방 근무를 강제하는 방식의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미 수도권과 일부 인기 과목으로 의사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에서 기존의 논의들이 해법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공개하면서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필수의사 확보를 위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공중보건장학제도에서 재정지원을 보다 강화한 방안으로 보여진다. 공중보건장학제도는 의과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졸업 후 장학금 수혜 기간만큼 지역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케 하는 제도다.

이와 비슷하게 지역 근무를 선택하는 경우 더 나은 보상을 해 의사가 지역 필수의료 분야에 남을 수 있도록 유인한다는게 정부의 구상이다.

검토안으로는 ‘지역의료리더 육성제’와 ‘지역필수의사 우대계약제’ 등이 있다. 지역의료리더 육성제는 대학-지자체-학생 3자 계약 하에 프로그램 선택 시 장학금·수련비용·정주 등을 지원하고 교수 채용을 할당해 일정 기간 지역 근무를 하도록 하는 안이다.

지역필수의사 우대계약제는 충분한 수입과 지자체 지원을 통한 정주 여건 보장 등을 조건으로 지역 필수의료기관과 장기근속 계약을 맺게 하는 안이다.

지난달 27일 김국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장기간 거주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해 의사 자부심을 가지고 지역에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소득과 정주 여건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모집 규모와 추진 방향 등에 대해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재정당국과 협의하는 과정 중에 있다.

다만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정책은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와 무상의료실현운동본부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가 처음 발표됐을 당시 “지역필수의사제는 오직 의대생의 선택에 의존해 실패한 바 있는 공중보건장학제도의 재탕”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의대생 대상 공중보건장학제도 사업은 지원율이 저조해 모집정원 100명 가운데 52명을 선발하는데 그쳤다. (사진=DB)

실제로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의대생 대상 공중보건장학제도 사업은 지원율이 저조해 모집정원 100명 가운데 52명을 선발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선발된 의대생의 의무복무 예정지를 살펴봐도 경기도 근무 인원이 32.7%로 가장 많아 제도의 본래 취지와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여기에 더해 장학금을 받은 후 자발적으로 중도반환해 지방 근무 의무가 소멸되거나, 장학금 수령 이전에 자진 취소한 사례도 나와 근본 해결책으로써 역부족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정치권에선 의무복무에 더 강한 강제성을 부여하는 ‘지역의사제’ 법안 추진 움직임이 포착된다. 지난 6월 21일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과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은 각각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과 ‘지역의료격차 해소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지방 및 의료취약지의 의사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의대‧한의대‧치대 입학생 중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선발된 사람은 의사면허 취득 후 10년간 특정 지역에서 의무복무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경우 의대 등의 입학자 중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선발토록 하고, 지역의사에 편입된 사람에 대해서는 근무할 기관 또는 시설을 정해 10년간 근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며, 두 법안 모두 의무복무 미이행 시 의사면허 취소까지 가능케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지역의사제법은 이미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주도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당시 여당의 반대 등으로 법제사법위원회에 법안이 계류되면서 끝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었다.

22대 국회에서는 여당과 야당 모두 지역의사제법안을 발의하자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지역의사제법의 의무복무 규정에 위헌성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 22대 국회에서는 여당과 야당 모두 지역의사제법안을 발의하자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지역의사제법의 의무복무 규정에 위헌성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사진=DB)

바의연은 “장기의무복무는 과잉금지의 원칙 위배, 직업수행의 자유 침해, 거주지 이전의 자유 침해와 같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요소가 있다”며 “만약 제도 시행 이후 헌법소원 등을 통해서 해당 법안이 위헌 결정을 받게 되면, 지역의사전형은 의대 입학의 편법적인 통로로만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더해 강제성 여부에 따른 실효성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남아있는 문제는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통해 일정기간 지역에 묶어 둔 의사들을 의무복무 기간 종료 이후에도 붙잡아 둘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바의연은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열악한 근무여건 및 생활 인프라, 대도시와 별 차이 없는 임금, 일자리 부족 등의 원인 때문”이라며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저수가 시스템 때문에 많은 환자를 봐야 의료기관의 운영 및 유지가 가능하기에 의료기관들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역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발적으로 민간의료기관들이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지역의료기관들의 경영난 해소를 위한 수가 인상과 세제 혜택 등이 필요하고,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이 직원 복지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채용하기 힘든 지역의료기관이 이미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사들을 지역에 붙잡아 두는 방안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발걸음을 직접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한 상황.

여기에 더해 의과대학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더라도 지역 내에 의대가 존재하지 않는 전남 등의 시‧도는 의대 입학 증원의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므로 이를 보완할 방안이 요구된다”고 짚었다.

이재혁 기자  / 기사승인 : 2024-07-10 08: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