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보

제약사 요청에 개인정보 넘긴 병원 의국장 5명 유죄

병원 법인도 유죄…의사 정보 제공은 “업무 연장선상” 판단

게티이미지 뱅크

[팜뉴스=우정민 기자] 병원에서 근무하던 내과 의사들이 수천 명의 환자 정보를 제약사에 무단으로 넘긴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병원 법인과 해당 의사들에게 줄줄이 벌금형을 선고했다. 의료기관의 구조적 허점과 개인정보 관리 부실이 낳은 이번 판결은, 환자 정보 보호의 실효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지나달 2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학교법인 A에 벌금 1,500만 원, 소속 내과 의국장 B, C, D, E, F(이하 피고인)에게 각각 8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반복적으로 환자 정보를 제약사에 제공한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2024고단1*47).

사건은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부천시 소재 H병원에서 발생했다. 당시 병원에 재직 중이던 의사들은 제약사 L의 영업사원들로부터 “판매 실적 증빙용 처방내역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병원 전산시스템을 통해 환자의 이름, 성별, 주민등록번호, 병원 등록번호, 진료과, 처방 정보 등을 포함한 자료를 엑셀 파일로 추출해 수차례 이메일로 전달했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총 1만 5천 건 이상으로, 피해자는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병원과 의사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체계적으로 개인정보를 유출했다고 판단했다. 제약사가 제공한 약품이 실제로 병원에서 얼마나 처방됐는지를 확인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도, 환자의 동의 없는 정보 제공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병원 측이 이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고 보고, 법인에도 관리감독 책임을 물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은 “의사 개인이 제약사 요청에 협조한 것이며, 병원의 공식 업무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병원 법인 측도 “정보 제공이 병원 내부 업무가 아니었고, 의사들의 개별적 판단에 의한 행위였기 때문에 법인의 책임은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약사 직원들이 전임 의국장에게서 후임자의 연락처를 넘겨받고, 새로운 의국장에게도 동일한 요청을 반복하며 정보를 지속적으로 받아온 정황, 정보 제공이 사실상 의국장의 업무처럼 후임자에게 인계된 사례 등을 근거로 들었다. 결국 재판부는 “의사들이 병원 내 직무 권한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제공했고, 병원은 이를 제지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은 “제약사 측이 이를 통해 영업비 집행 내역이나 임상시험비 규모 등을 정하는 데 활용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협조 이상의 의도가 있었다는 점도 무겁게 본다”고 밝혔다. 아울러 병원 측이 사건 발생 이후 관련 기능을 폐쇄하고 경고 문구를 삽입하는 등 재발 방지 조치를 했다는 점은 일부 참작했다.

양형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개인적 금전 이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개인정보 보호의무를 무겁게 위반한 행위이며, 피해자 수와 유출된 정보의 민감성을 감안할 때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일부 병원 현장에서 관행처럼 이뤄졌던 정보 제공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이 명확히 판단된 사례로, 유사 사례에 대한 대응 기준으로 참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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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민 기자

기사입력 2025.05.07 06:00